가짐 보다 쓰임이,
더함 보다 나눔이,
채움 보다 비움이…
승효상의 건축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빈자의 미학’은 그의 건축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건축에 ‘비움’을 실천함으로써 그 속을 인간의 삶으로 채워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건축의 본질과 중심에 대한 승효상의 고집이자 철학이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이며, 건축가는 그 ‘공간’을 창조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 선언 이후 ‘어반 보이드urban void’, ‘문화풍경culturescape’, ‘지문landscape’ 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핵심 언어를 통해 건축의 본질에 접근해 왔다.
지난 30년을 뒤돌아보는 시점에서 새로이 제시한 ‘감성의 지형’은 한 단계 더 발전된 화두로,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승효상의 건축 개념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지 외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짓는 것이며, 집 속에 담기는 우리의 삶이 그 집과 더불어 건축되고, 그에 따라 바뀐다는 의미까지 담긴다. 좋은 건축이란 우리의 선함, 진실됨, 아름다움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것으로, 그런 건축이 모여 사람이 사는 세상의 풍경 즉, 감성의 지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승효상의 손 끝에서 탄생한 문화공간인 파라다이스 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빈자의 미학’이 시작된 수졸당부터 웰콤시티, 추사관, 사유원 명정, 하양 무학로 교회 등 대표작의 모형과 사진을 통해 승효상 건축의 흐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동안 공공 영역에서 건축 환경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노력은 물론 건축가 본연의 입장에서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