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the artist’s PUBLIC?”
1969년, 뉴욕의 AWC에 의해 작성된 선언문에서 예술가에게 있어서 PUBLIC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다른 예술가도, 비 평가도, 큐레이터도, 딜러도, 컬렉터도 아닌 어떠한 대상이 예술가에게 “PUBLIC”이 되어야 하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해당 “PUBLIC”이라는 광범위한 정의에는 어떠한 대상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미적 감상의 대상이라는 좁은 영역의 정의로부터, 미술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의 포지셔닝에 대한 정의까지 넓은 것을 포함하는 행위일 것이다. 미술작품이 향유 되는 영역을 크게 두 부분으로 극단적인 구 분을 시도한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각 극단으로부터 번져 나와 교집합을 이루는 영역의 부피가 미술이 가지고 있는 ‘공공적’인 것의 부피에 비례한다고 한다면, 작가 뮌은 지금 미술계의 상황이 ‘공공성’의 변화 혹은 약화에 근거한다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했다. 이 공공성의 약화는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미술분야 역시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공공公共’이란 사회의 일반 구성원에게 공동으로 속하거나 두루 관계되는 것을 뜻하며 물, 대기, 공기 등의 환경같은 것들이 공공성을 가진다. 모두에게 필요하며 그 전체에 대해 개인이나 구성원 일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고 함께 그 질을 개선시키거나 장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의 관심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미술과 관련하여 공공성을 잃는다는 것은, 미술계 내부에 속한 자들끼리만 모여 ‘예술성’ 안에서만 맴돌며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공공성으로 여기는 그룹과 주어지는 이미지의 상호 반복 소비의 맹목적인 대중의 그룹의 거대화로 이어졌다. 모두가 Public을 이야기를 하고, Public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모두가 위 태롭게 진행되는 지금의 세상을 마주한 상태에서 미술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동시에 모두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모두가 미술에 대해서 이야 기하고, 또한 모두가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예술계 내부에서는 사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기획이나 작품을 우리의 이야기로 환산하고, 개인은 공중公衆의 일부로서 그 이야기를 사유와 함께 비판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쉬운 Public, 어려운 Public Public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로 번역이 된다. 그것은 그것이 말하여지는 시간, 공간, 그리고 그 시공간을 둘러 싼 환경에 의해서 또 다시 많은 의미로 번역될 것이며, 혹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그 사람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서 다시 많은 의미로 번역될 것이다. 이 수많은 변수들이 곱으로 이루어져서 Public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것이다. 다만, 어떻게 그것이 번역이 되든, 그 단어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건들과 사람들에 의해서 언제든 언급되어야 하며,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 폐쇄적인 사건들과 닫혀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 라고 할지라도.